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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단상 06 : 은퇴이후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이제 얘기가 어느덧 인생조망 시리즈의 6번째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한 얘기로 접어 들었다. 여자 뭉크라 불리는 여성 아티스트가 있다. 40세의 늦은 나이로 미술에 입문하고 70세가 되어서야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80대에 전성기를 구가하여 89세인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약 11년 뒤인 201099세의 나이로 타개한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가 그녀이다. 전세계 주요 미술관 뜰에 엄마(마망)라는 대형 거미조형물 작품(청동, 스테인레스, )을 설치한 키 140cm 겨우 넘는 할머니는 예일과 메사추세츠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고 일본 문화협회에서 세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늦깎이로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은 부르주아만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첫 작품이 32세였고, 클로드 모네도 33살에야 첫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평균수명이 대략 40세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처녀작이 모두 만년작으로 데뷔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기 인상파로 현대미술을 연 세잔의 경우는 더욱 심해 43살이 되어서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파리 세관원이었던 앙리 루소(Henri Rousseau)40세 그림복제로 그림연습을 시작해 47살이 되어서야 첫작품이 앙데팡당전에 전시 되었다. 이밖에 마크 로스코(Mark Rothko)43세에,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62살에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고, 나이브 아티스트(아카데미에서 정규 코스를 거치지 않은 예술가)로서 캐나다의 모드 루이스(Maud Lewis)는 그 삶과 사랑이 에단 호크와 샐리호킨스 주연의 영화<모디(Maudie)>로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나이브 아티스트의 최고봉은 미국의 국민할머니(Grandma Moses)로 추앙 받으며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그녀의 그림은 원초적 풍경에 대한 국민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는 애정어린 평가를 받은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일 것이다. 그녀는 무려 76세에 붓을 처음 잡았고 100번째 생일을 맞은 후 영면에 들었다.

왜 필자가 은퇴 이후의 삶에서 나이브 아티스트를 비롯한 늦깎이 화가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진정 원한다면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고 둘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해낼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화가들의 두 가지 특징이기도 하다. 첫째 진정으로 원한다면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은 그냥 그런 권고가 아니다. 필자는 삶의 교훈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다. 은퇴 이전까지 생계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또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삶을 살았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지식과 인생의 경험을 쌓았을 것이고 그만큼 보는 시야가 넓어 졌을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달라졌을 것이란 의미이다. 한 번뿐인 인생, 이쯤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모습을 한 번 다시 보자. 그리고 그냥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누구나 시작은 두렵다.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냥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두려움이 공포로 바뀌지 않도록 그냥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삶의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지식이란 주어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학습을 통해 머리에 넣은 것이라면, 지혜는 환경의 영향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그 대응에 따른 심리적·정서적 대응까지도, 즉 자기 자신의 마음까지 다스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지혜는 완성이 없다. 현수준에서 살아가면서 완성시켜 가는 것일 뿐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지혜는 이미 인생 1막을 살면서 어느정도 갖추어 졌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일단 시작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잘 해낼 것이다. 우선 인생 1막을 사는 동안 쌓인 지혜가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인생1막의 새로운 도전시 가졌던 두려움이라는 PTSD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생각보다 두렵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지혜에 따른 정서적인 측면 이외에 말 그대로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다라는 것이다.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간절히 원한다면 사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왕 시작을 미술계로 했으니 계속 이어가자면 현대 미술을 연 세잔은 앞서 얘기했듯이 43살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나섰다. 늦깎이 세잔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지만 이후 현대 미술을 연 사과를 그렸다. 전통적인 화가들(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운 아카데미스트들)은 화가의 한가지 관점(, 하나의 소실점(물체를 연장하였을 때 연장선과 연장선이 만나는 점)이 하나)에서 그림을 그렸으나 세잔은 복수의 소실점으로 그림을 그렸고 원근법도 색채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러한 세잔의 사과는 이전에 없었던 환원주의(복잡한 현상을 잘게 쪼개어 기본요소로 설명하는 것)적 실험으로 평가된다. 어쨌든 세잔의 혁신성은 다각도에서 바라본 시점을 한자리에 소환한 것으로 이는 후에 조르주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주의(큐비즘)으로 이어지며 현대 회화의 새장을 열게 된다. 이러한 세잔의 사과성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뉴턴의 만유인력 사과와 함께 인류역사의 3대 사과로 불리우게 된다. 물론 세잔 역시 아카데미에서 미술교육을 받긴 했다. 은행가였던 아버지는 당시의 유행과도 같던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하여 법학과에 입학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22살에 파리로 그림유학을 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혹독하게 받을 정도로 악평에 시달려 등단조차 못하다가 1870년 프러시아 전쟁 발발시 징집을 피해 피신한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근처에 살았다가 이후 옮긴 퐁투아즈에서 피사로를 만나 당시 새로운 화풍이었던 인상주의 화풍을 익히고 후기 인상파 화가로 거듭났다.

그러니 전혀 새로울 수 있는 인생 2막을 여는 우리들과는 다를 수 있고 이에는 오히려 루이스 부르주아가 더 적합한 예일 수 있겠으나 굳이 세잔을 예로 든 이유는 전술한 은퇴 후 삶의 키워드인 간절히 원하는 삶과 생각보다 잘 해나갈 것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세잔처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길로 나서 입지전적 작품을 남겼다. 지금까지 미술쪽을 보았으니 예술의 양대축인 클래식 음악가를 살펴 보면, 먼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의 길에 들어선 입지전적 인물은 클래식의 어머니인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아버지는 법률가를 희망), 낭만파의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아버지는 의사를 원함), 교향시 몰다우로 유명한 국민악파의 대표인물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아버지가 무엇을 원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음악가가 되기 위해 가출을 불사함), 왈츠의 왕이라 불리우는 요한 시트라우스 II(Johann Strauss II, 아버지 요한 시트라우스 I세 역시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음악가였으나, 아들이 음악하는 것은 극렬 반대하여 시트라우스 II세는 몰래 음악을 공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으로 유명한 마스카니(Pierto Mascagni, 아버지는 법률학자가 되기를 원함), 볼프 페라리(Ermanno Wolf-Ferrari, 아버지는 화가가 되기를 원함) 등이 있다. 아버지와 뜻이 다른 아들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부모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가의 길을 택한 러시아 불멸의 현대음악가로 유명한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tsch Stravinsky, 부모는 법률가가 되기를 원함)를 보면 그런생각은 넣어 두는 것이 좋겠다. 게다가 아버니를 일찍 여의어 편모가 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쓴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어머니는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하였다)도 있고,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바그너(Richart Wagner), 포스터(Stephen Collins Forster),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witsch, Mussorgsky), 정규음악을 받지 않은 해군사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 오스트리아 가곡 작곡가인 볼프(Hugo Filipp Jacob Wolf), 독학으로 작곡법을 익힌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바르톡과 함께 헝가리 국민음악 건설자로 알려진 코다이(Zoltan Kodály) 등 수 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잘 다니던 직장을 두고 그냥 하고 싶었던 꿈을 쫓아 그냥 전업한 작곡가들도 있다. 법률을 전공하고 사법성 관리였던 차이코프스키(Peter Il’yich Tchaikovsky), 법률을 전공한 쇼송(Ernest Chausson), 근대 음악 프랑스 6인조의 한 명이자 리오데자네이로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사무관이었던 미요(Darius Milhaud), 심포닉 재즈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미국의 그로페(Ferde Grofé)는 소싯적 엄청난 떠돌이로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화이트맨이 새로 만든 신생 악단에서 편곡을 맡으며 음악가로 입문하는 등 수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그 예이다. 뿐만 아니라 에스파냐랩소디로 알려진 프랑스 근대음악의 선구자 샤브리에(Alexis Emmanuel Chabrier)은 무려 39세에 늦깎이로 음악에 입문하였고 프랑스 해군이었던 루셀(Albert Roussel)25세에 음악가로 전향 하였다.

굳이 예술가들을 예로 든 이유는 오랫동안 인류 역사에서 예술과 행복간의 상관 관계를 다룬 행복론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누구나 자신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행복은 서로 다를 것이며 현대처럼 다양성과 개성의 분화가 빠른 시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세, 근대, 현대 초기까지만해도 예술은 수준 높은 고차원적 행복의 원천으로 여겨졌고, 수많은 인류사를 빛낼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클라인과 바그너에서 예술은 일체의 사물의 배후에 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썼다. 요약하자면 은퇴 이후에는 누군가의 자녀로서, 누군가의 부모로서 해내야 했던 의무감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삶을 찾아 가라는 것이다. 완성해내고 경제적·사회적 성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꼭 이루지 못하더라도 과정만으로 행복한 그런 삶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다 보면,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책의 제목이 깨달음을 얻은 부처(붇다)가 아닌 싯다르타일까? 체험(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도달한 경지란 상대적이라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더욱이 깨달음 이후에 대한 저술은 불교경전으로서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싯다르타도 중간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오타마의 가르침을 받기를 포기하고 그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고행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간다. 여정이 끝난 후 도착보다는 여로가 더 나았다는 걸 깨닫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