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0대에 접어 들었다면 인생은 고요속에 폭풍일 것이다. 크게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로 나누어 보면 사회생활에서 20~30대 창업자라면 회사는 안정기에 접어 들었을 것이고 직장인이라면 부서장급에 진입하여 가장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냥 겉보기일 뿐이고 창업자는 회사의 재도약을 위한 신사업에 한창 고민일 때이고 직장인은 FIRE족이 아닌 이상 50대 임원이 되기 위한 무한 실적 경쟁에서 밤잠 뒤척이며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면서 30대에 인생2막을 계획해둔 사람은 그 준비로 너무 바쁜 나날일 것이다.
가정적으로도 30대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다면,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을 것이다. 배우자는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싫증이나 권태기 또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익숙한 삶의 지속에 따른 새로운 흥미를 찾아 골프나 등산 등에 심취해서 마치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여지고 일부는 사실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일상은 진부해 보이고 매사 매너리즘에 빠진 듯하여 모든 것이 루즈해 보이고 전술한 바와 같이 골프, 테니스 등 새로운 여가활동에 빠져들거나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의 잦은 술자리도 빈도가 늘어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가장 허비하면서 보내는 시기가 아마도 40대일 것이다. 굳이 허비라고 표현한 이유는 가장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어디서 읽었는지 또는 봤는지 기억은 남지 않았지만 가슴에 뼈져리게 새겨진 금과 옥조의 말이 있다. “실패를 경험이라 부를 수 있을 때는 두 번째 기회가 존재할 때이다.” 정말 피 같은 말이다. 50대 이후의 인생 2막에서는 실패했을 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다. 특히 시간적으로, 그리고 건강적으로는 더욱 어렵다. 50대에는 하루가 다르게 신체적인 노화를 경험하게 된다. 젊었을 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치아는 상해가고 팔 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나오기 시작하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습득력도 점차 퇴화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40대에는 그 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을 스스로 부정하기 어려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40대에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두 번째 기회를 위한 삶의 여유(Buffer)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이 때 여유에는 재정적, 육체적, 정신적, 지적, 경험적 부분을 망라해야 한다. 재정적으로는 한번의 실패 이후 두 번째 시도가 가능할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할 것이고 육체적으로도 노화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뒤 다시 벌떡 일어나 도전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있어야 할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한 번 정도의 실패는 좌절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독서나 명상 등을 통해 닦아 두어야 재정적, 육체적 여유를 만들어 둔 것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정신적인 여유는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 하겠다. 정신적 여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육체적, 지적 여유가 있다면 조금 더 정신적 여유를 갖기 용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정신적 여유가 없다면 육체적, 지적 여유는 모두 별무소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다음 지적 여유는 아무리 새로운 제2의 도전을 위한 모든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두려워 포기하게 된다. 아니, 지식이 없으므로 아예 도전 영역이라는 생각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사실 40대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자산이라면 안정화된 재정과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도전에서 실패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가지고 있는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므로 창업한다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경험들을 찾아서 경험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엇보다 긴요할 것이다. 40대 원숙기에 매너리즘에 빠지려는 자신을 다독여 인생 2막의 도전에서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뼈저린 경험이라 부를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시기는 40밖에 없을 듯하다.
삶에서 가장 나태해질 수 있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40대를 다른 한 편으로 인생 2막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점에서 보면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예전 조선시대라면, 평균 수명이 40~50대 수준으로 60회 생일을 환갑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았다고 보았던 시절이라면 40대에 입신양명하고 이 때까지 벌어둔 돈과 키워둔 자식으로 50대 잘하면 60대까지 살면 훌륭한 삶이었다고 자족할 수 있었던 역사상의 시절이 백세시대가 되면서 60세 정년의 사회적 가치는 재앙적 삶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일찍이 산업화를 이루고 현대 복지체계의 원류가 된 사회주의 개념이 싹튼 유럽처럼 소비와 여가의 균형(삶에 있어서 모든 생명체에게 유일한 독점지대인 시간의 소비에 있어서의 선택)을 이룬 사회까지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100세 시대는 그야말로 재앙적 수준의 환경이어서 40대의 준비는 이제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답의 영역이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40대 준비는 절실의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작금 사회를 조망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찔하고 안타깝다.
다른 기회에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논의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글에서는 생물학적 인간은 이미 100세 시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전혀 준비가 안되어 60이라는 정년을 두고 조직사회에서 퇴출되고 있으나, 인구통계학적으로 자녀가 부모를 공양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젊은 날 우리사회의 자본축적을 위해 낸 준조세인 연금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독고다이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전인미답의 길을 말이다. 오늘날의 40대는 그만큼 절실한 세대이며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첫 번째 도전은 전입 미답의 길로서 실패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바, 그 첫 번째 실패를 경험이라 부를 수 있도록 여유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독자제위의 각성과 건투를 바라고 또 바라는 필자의 간절한 마음 뿐이다.
끝.